제 2부 당사자연구의 실제
제 5장 커뮤니케이션계의 고통
‘
말 되찾기’의 연구 ~ ‘죽고 싶은 소망’부터 ‘살고 싶은 소망’으로~
◎ 첫머리
제 안에는 계속 ‘죽고 싶은’ 희망이 있어서 그것을 끌어안고 지냈습니다. 연이 닿아서 우라가와로 옮겨와 살게 되어서도 그때까지도 동료에게 일주일간 계속해서 ‘죽고 싶어!’ 라고 계속 하소연해서 구급외래에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죽고 싶어!’ 라고 하는 관념이 발생하면 그 기세를 멈출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이 것 때문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었습니다. 우라가와에 오고 나서도 처음에는 정말로 죽고 싶고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위화감도 있었습니다.
◎고통의 프로필
저의 자기병명은 ‘통합실조증 습관성 자기 학대형. 환청씨와 나의 공의존 타입’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화를 내거나 혼을 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겁도 많고 사람에게 기대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행동도 느리고 항상 부모님에게 혼나거나 했습니다.
발병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기분이 굉장히 침울해지고 사람에게 인사를 받아도 인사를 해주지 않기도 하고 집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이웃집 아이의 목소리로 ‘진짜 못 치네’ 라던가 ‘잘은 못 하네’ 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전문학교에 들어가서도 5명 정도 남자의 목소리로 ‘너는 죽는 편이 나’ 혹은 ‘아파트 꼭대기에서 떨어져내려’ 라는 말이 들려서 스스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병이라고 알았을 때에는 안심했습니다. 나의 고통을 겨우 설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사신씨’라고 부르고 있는 압박과 ‘미치아키씨’ 라고 부르고 있는 나를 위로해주는 환청씨와의 좁은 세상 속에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막다른 길에 들어서 버렸습니다.
◎연구의 목적
당사자연구의 목적입니다만 처음에는 구급외래의 진료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것과 ‘죽고 싶은’ 희망을 벗어던지고 싶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라가와에 와서 제 방법은 ‘자신의 고통을 그대로 떠넘기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고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을 스스로 보살피도록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당사자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연구의 방법
저는 지금까지의 고통을 화이트보드에 써서 패턴을 명확하게 하는 작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데이케어에서는 자신의 고통을 말로 만들어가는 작업을 했습니다. ‘죽고 싶다’라고 말하는 행동화를 하기 전에 ‘말로 하는’ 것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고 S.A (자조그룹), W.A (여성의 자조그룹)에 참가해서 동료들의 말하는 방법을 참고하고 베델과 데이케어의 당사자연구 미팅에 참가 했습니다.
◎‘죽고 싶은’ 패턴의 메커니즘
저는 20살 때에 통합실조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4년간 ‘죽고 싶다’라고 하는 관념에 지배를 받았습니다.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병원에 가서 입원을 하고 약을 받고 주사를 맞았습니다. 그 때에는 무척 안심이 되기 때문에 ‘죽고 싶다’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만 그후에는 역으로 많은 약으로부터 머리가 움직이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 고통스러워 졌습니다. 퇴원을 하고난 후에도 똑같이 ‘왜 살아가고 있는 걸까’라던가 ‘장래의 일도 생각할 수 없는데 지금 죽는 편이 낫다’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면 또 다시 ‘죽고 싶다’는 관념(사신씨)이 나타나서 구급외래에 검사를 받고 긴급입원을 하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당사자연구 안에서 구급외래를 진찰 받는 의미를 생각했을 때 보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의 연결’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병원이 유일한 안심이 생기는 장소였습니다. ‘병’이 안심을 주기 위한 매체로써 병원을 사용해 사람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사람과 연결되는’ 수단으로서의 죽고 싶은 메시지
저는 죽고 싶어지면 ‘구급외래에 데려다 줘!’라고 부모님께 늦은 밤이라도 부탁해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까지 40분 정도 걸립니다. 가장 힘든 것은 ‘죽고 싶은’ 고통이 아닙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도중에 ‘죽고 싶은’ 기분이 점점 나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책이 필요해집니다. 역시 스스로는 외롭고 부모님은 늦은 밤에도 관계없이 운전 하고 있고 병원에서는 의사 선생님이 기다려 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째서인지 ‘죽고 싶은’ 기분을 킵하고 최악의 상황에서 병원으로 날아 들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열심히 책망해서 기분을 고통스러운 상태로 만들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사람과 연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기학대형이라는 자기병명을 붙인 이유입니다.
늦은 밤,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 선생님에게 ‘죽고 싶다’고 말해도 역시 처음은 ‘약을 가져 올 테니까 괜찮아’ 라고 말하지만은 ‘돌아가면 손목을 그어버릴지도 몰라요’ 라던가 ‘약을 한꺼번에 다 먹어버릴지도 몰라요’ 라고 끈질기게 졸라서 입원을 했습니다.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선생님과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병이 아니게 되는 것은 사람과의 연결된 손을 잃게 된다는 공포감이 있었습니다.
◎말을 되찾는다
북해도 우라가와에 와서 정신과 외래에서 진찰 받았을 때에 주치의 선생님께서‘죽고 싶다, 라고 말하는 것은 태어난 고향에서 밖에 통용되지 않는 한 종류의 ’사투리‘로, 우리는 그 ’말‘을 모릅니다.’라고 말하셨습니다.
우라가와에서는 구급외래에서 진찰을 받고 ‘주고 싶다’고 말해도 전혀 입원시켜주지 않고 17개 복용 하고 있던 약도 1개월에 4개로 줄었습니다.
‘저 죽어요’라고 말해도 ‘네~ 알겠습니다’로 끝이었습니다.
거기서 베델의 당사자연구 미팅에서 ‘사신씨와의 사귀는 연구’를 시작하면 ‘구급외래에 가고 싶어지면 저에게 전화주세요’ 라고 멤버로부터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사신씨가 찾아왔을 때 용기를 내서 멤버인 아오미즈씨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자 ‘딱 좋을 때에 전화해 줬네. 지금 찌개 만들고 있는데 오지 않을래?’ 라고 권유받아서 구급외래가 아니라 공동주거 레인보우 하우스의 찌개 파티에 갔습니다. 거기에서는 유일하게 나의 사신씨를 묻는 사람도 없고 즐겁게 찌개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제 안에서 사신씨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은 저의 ‘죽고 싶다’는 사실은 ‘살고 싶다’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였다는 것입니다.
우라가와에서는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자리가 실로 많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저도 역시 자신에 대하여 모두가 들어주기 때문에 ‘그럼 내 이야기를 해보자’라고 생각해서 미팅에서 자주 나와서 다른 사람의 감정 표현 방법이나 말을 듣고 점점 자신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외었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것 즉 ‘말’의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당사자연구로부터 얻은 것
우라가와에 와서 당사자연구를 하고 ‘죽고 싶다’ 사이클의 메커니즘을 분명하게 해서 자신의 진짜기분을 ‘우라가와어’로 번역하고 정리하는 중에 많은 수확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병이 낫는 것이 불안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과 연결하는 방법입니다. 고향에 있었을 때나 우라가와에 막 왔을 때는 ‘죽고 싶다’고 고통스럽게만 표현할 수 있었으니 자기 나름대로의 ‘말’로 솔직하게 자신의 기분을 설명하는 것에 따라서 새로운 연결 방법을 몸에 익혔습니다.
세 번째는 동료가 생긴 것입니다. 돈이 드는 구급외래 보다도 돈이 필요 없는 동료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은 레인보우 하우스(공동주거)에서 동료와 함께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매일 가는 장소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데이케어나 베델에 가기도 하고 강연에 가기도 해서 집에는 거의 있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고통을 소중하게 여기자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사자연구를 해서 좋았다고 생각한 것은 ‘이렇게 많이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잘 살고 있네’라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었다’, ‘동료가 없어서 외로웠구나’ 하는 것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알았습니다. 당사자연구에서는 무엇이든지 말해서 자신의 고통을 정리하고 자신에게 무엇이 일어나 있는가를 명확하게 해가는 프로세스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것으로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사라지고 점점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로 사람과 연결되는 것의 중요함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기자신의 말로 말하는 것이 정말로 자신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에 협력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소감&요약**
일단은 상당한 병식과 자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
죽고싶은 희망을? ‘통합실조증 습관성 자기 학대형. 환청씨와 나의 공의존 타입이라고
자기병명을 붙인 모습도 좋습니다
이렇게 거창하게 병명을 붙이는것보다 저라면?
진짜 병이름 처럼만들어 버렸어요..
전 이름을 붙인다면 ‘내안의 누군가와 죽음을 생각하다,
난 문학적 표현이 좋더라고요..
-죽고 싶어지면 ‘구급외래에 데려다 줘!’라고 부모님께 늦은 밤이라도 부탁해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까지 40분 정도 걸립니다. 가장 힘든 것은 ‘죽고 싶은’ 고통이 아닙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도중에 ‘죽고 싶은’ 기분이 점점 나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책이 필요해집니다. 역시 스스로는 외롭고 부모님은 늦은 밤에도 관계없이 운전 하고 있고 병원에서는 의사 선생님이 기다려 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째서인지 ‘죽고 싶은’ 기분을 킵하고 최악의 상황에서 병원으로 날아 들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열심히 책망해서 기분을 고통스러운 상태로 만들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사람과 연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기학대형이라는 자기병명을 붙인 이유입니다.-사람과 연결되는’ 수단으로서의 죽고 싶은 메시지
당사자연구를 하고 ‘죽고 싶다’ 사이클의 메커니즘을 분명하게 해서 자신의 진짜기분을 ‘우라가와어’로 번역하고 정리하는 중에 많은 수확이 있었습니다.
-우라가라어(베델)로번역하다
***우리스타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미디어&강연 > 하나.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당사자연구에 관한생각 (0) | 2016.04.04 |
|---|---|
| 당사자연구에 관한생각 (0) | 2016.04.04 |
| 제 4장 당사자연구의 권고방법 (0) | 2016.03.29 |
| 제 3장 당사자연구 용어의 기초 지식 (0) | 2016.03.29 |
| 당사자 연구 이념 2장 계속~ (0) | 2016.03.25 |